✏️1: 등록금을 내다 – 돌이킬 수 없는 도전의 시작
학교에 등록금을 냈다.
이 나라는 현금을 주로 사용해서 한동안 가방속에 등록금을 항상가지고 다녔다.
두 딸 합쳐서 17만 페소, 한화로 환산하면 4백만원이 넘는다 결코 가벼운 금액은 아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매달 수학 학원, 영어 학원, 논술 학원에 셔틀버스 태워가며 쏟아부었던 학원비를 떠올리면 오히려 합리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한국에서는 의무교육이라 학비 자체는 공짜였지만, 아이들이 흥미도 없는 공부를 억지로 하면서 눈빛이 점점 꺼져가던 그 모습이야말로 가장 비싼 대가였다.
그래서 결심했다. 환경을 바꾸자, 아예 통째로 뒤집어버리자.
50대 중반이라는 나이에 두 딸을 데리고 필리핀까지 날아온 건 무모한 도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좌우명은 언제나 변함없다.
노력하지 말고 즐기자! 즐기려고 온 거니까 후회 따위는 사치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돌아오는 6월 초까지 이곳은 여름방학이라 그때까지 어학원에서 영어를 집중적으로 갈고닦는 중이다.
매일 아침 딸들과 나란히 앉아 수업을 듣는 50대 아빠의 모습이 좀 우습기도 하고 멋지기도 하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선생님들도 처음엔 신기하게 쳐다보더니 이제는 응원해 주시는 분위기가 되어서 감사할 따름이다.
2026년 3월 21일 일로일로에 첫발을 디딘 이후 벌써 두 달 가까이 흘렀고, 이제 정말 본격적인 시작이 코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2: 입학 시험 – 백지 답안지의 충격과 작은 용기
중1 큰딸은 한국에서 영어를 조금씩이나마 꾸준히 공부해온 터라 입학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을 거라 예상했다.
걱정의 핵심은 초6 작은딸이었다.
이 아이는 정말 알파벳 ABC부터 새로 시작해야 하는 레벨이라 솔직히 막막함 그 자체였다.
혹시 제 학년에 입학하지 못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속마음 깊은 곳에서 계속 올라왔지만, 아이들 앞에서는 절대 표현하지 않았다.
아빠가 흔들리면 아이들도 흔들리니까 겉으로는 태연한 척 웃어 보였다.
입학 테스트는 이틀에 걸쳐 진행되었다.
첫째 날은 학교에 직접 가서 필기시험을 치렀고, 둘째 날은 줌 화상회의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시험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거의 백지에 가까웠다.
작은딸이 답안지를 넘기는데 빈칸투성이인 그 종이를 보면서 아빠인 내가 더 가슴이 아팠다.
인터뷰 때는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는데, 작은딸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떨면서 단답형 대답을 하나씩 내뱉었다.
열 개 질문 중 일곱 개 정도를 겨우겨우 답하는 모습에 가슴이 철렁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영어를 거의 모르는 아이가 처음 보는 외국인 선생님 앞에서 떨리는 입술을 열고 용기를 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합격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큰딸은 비교적 수월하게 시험과 인터뷰를 마쳤는데, 동생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더니 괜찮을 거라며 안아주는 모습이 참 듬직했다. 결과 발표를 기다리는 그 며칠이 마치 일주일처럼 길고도 길게 느껴졌다.
🎉3: 합격 통보 – 필리핀 사립학교의 넉넉한 품과 감사
다행히도 두 딸 모두 합격 통보를 받았다.
필리핀 사립학교 특성상 외국인 학생을 웬만하면 받아주는 분위기라는 건 미리 알고 있었지만, 막상 합격이라는 소식을 확인하는 순간 안도감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백지에 가까운 답안지를 냈던 작은딸까지 합격했다는 소식에 속으로 만세를 세 번이나 불렀다.
빈 답안지를 내밀었는데도 기회를 준 학교의 넉넉한 마음이 진심으로 감사했다.
이곳 학교는 영어가 부족한 외국인 학생에게도 문을 열어주고,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고 한다.
물론 그 기회를 어떻게 살리느냐는 온전히 우리 가족의 몫이다.
한국에서 학원에 치여 공부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잃어버렸던 아이들이 이 새로운 환경에서 배움의 즐거움을 다시 찾아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교복은 다운타운까지 가서 사야하는데, 마치 30년 전 지방 시골학교 느낌이라 무척 생소하다.
두려움보다 설렘이 점점 커지고 있는 그 표정을 볼 때마다 아빠로서 이보다 더 큰 보상은 없다고 느낀다.
작은딸은 합격 소식을 듣고 나서 그날 저녁 혼자 조용히 영어 단어장을 펴 들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책을 집어 든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여기까지 오길 정말 잘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여기까지 군말 없이 잘 따라와 준 두 딸이 이 세상에서 가장 기특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다.
이 벅차오르는 감사한 마음을 절대 잊지 않고, 매일매일 함께 최선을 다해 성장해 나갈 것이다.
🏆4: 백지에서 1등 졸업까지 – 우리 셋의 약속과 새 출발
비록 백지 답안지로 입학했지만, 졸업할 때는 기필코 1등으로 나가자고 아이들과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허황된 꿈이라고 비웃을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진심 그 자체다. 지금 아무것도 모르는 바닥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오히려 성장의 폭이 누구보다 크다.
바닥을 찍었으니 이제 올라가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이 학교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졸업장을 손에 쥐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성과이자 인생 최고의 감사가 될 것이다.
50대 중반의 아빠가 이국땅 필리핀 일로일로에서 두 딸과 함께 새 출발을 한다는 건 분명 녹록지 않은 길이다.
경제적 자립도 이뤄내야 하고, 블로그도 성장시켜야 하고, 온라인 광고회사 창업이라는 큰 그림도 그려야 한다.
할 일이 태산처럼 쌓여 있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재밌고 가슴이 뛴다. 자비량 유학생활이라는 말이 거창해 보여도, 결국 하나씩 해내다 보면 길이 보일 거라 믿는다.
인생은 언제나 도전에 가치를 두고 살아야 진짜 빛이 나는 법이다.

어학원에서 매일 아이들과 함께 영어를 갈고닦으며 6월 개학을 손꼽아 준비하는 지금 이 시간이, 나중에 돌아보면 우리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고 말하게 될 것이다.
우리 셋의 이야기는 이제 막 첫 페이지를 넘겼을 뿐이다.
백지에서 1등까지, 그 여정의 모든 순간을 이 블로그에 빠짐없이 기록해 나가겠다.
슈퍼울트라캡숏절대초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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