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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일로일로 생존기

🙏 일로일로 유학 중 만난 리잘 현지교회 주일학교, 둘째 딸과 함께한 하루

by 피터빅 2026. 7. 29.

필리핀 일로일로 유학 생활 중 둘째 딸과 함께 리잘 지역 현지교회 주일학교를 다녀왔다. 일롱고어도 모르는 아빠가 느낀 낯섦과,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의 밝은 미소가 전해준 뭉클한 깨달음을 솔직하게 적어본다.

리잘의 주일성경학교

일로일로 리잘 지역 현지교회를 찾아간 이유

지난 주 한인교회 예배를 마치고 둘째 딸과 함께 리잘이라는 동네의 현지교회를 방문했다. 필리핀 유학을 오기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정이었다. 이 교회는 공립 유치원 건물을 일요일 하루만 빌려서 어린이 주일학교로 사용하고 있는 곳이다. 평일에는 동네 아이들이 유치원 수업을 듣는 교실이, 주일에는 찬양과 말씀을 나누는 예배당으로 바뀐다. 책상과 의자도 유치원생 몸에 맞춘 작은 것들이라, 초등학생 아이들이 앉기에는 조금 불편해 보였다. 그래도 아이들은 그런 불편함을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리잘 지역 현지교회는 어떤 곳인가

리잘은 일로일로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지만, 형편이 어려운 가정이 많이 모여 사는 동네다. 이 곳 아이들은 대부분 초등학생이고, 유독 여자 아이들의 비율이 높다. 와숑 사립학교처럼 정돈된 교실 환경과는 거리가 멀지만, 아이들이 모여 앉아 찬양하는 모습만큼은 어느 곳 못지않게 진지하다. 필리핀 국제학교나 사립학교에 다니는 우리 딸들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서, 같은 일로일로 하늘 아래 이렇게 다른 삶이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한인교회 후원으로 유지되는 주일학교

이 주일학교가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는 건 일로일로 한인교회의 꾸준한 후원 덕분이다. 매주 이 곳까지 와서 예배를 인도하는 현지 전도사님도 사실 이 주일학교 출신이다. 지금은 대학에 다니면서 틈틈이 시간을 내어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자란 아이가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와 다음 세대를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 유학 생활을 하며 잊고 지내던 감정 하나가 슬며시 올라왔다.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과 함께한 주일학교 풍경

주일학교 예배는 화려하지 않다. 마이크도 변변치 않고, 반주도 소박하다. 찬양 인도자가 스피커 대신 육성으로 노래를 시작하면 아이들이 하나둘 따라 부르며 목소리를 보태는 식이다. 악보도, 화면도 없이 그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찬양이지만, 그 어떤 화려한 무대보다 마음에 오래 남았다. 그런데도 아이들의 눈빛과 목소리에는 꾸밈이 없어서 오히려 마음이 더 크게 움직였다.

여자아이들이 유독 많은 이유

이 곳에 나오는 아이들 중에는 남자아이보다 여자아이가 눈에 띄게 많다. 정확한 이유를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어림짐작으로는 집안일을 돕느라 시간이 부족한 남자아이들보다 여자아이들이 교회 활동에 참여할 여유가 조금 더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둘째 딸도 같은 또래 여자아이들이 많은 걸 보고 처음에는 어색해했지만, 곧 자연스럽게 옆에 앉아 손을 잡고 찬양을 따라 불렀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또래 여자아이들끼리는 눈짓과 몸짓만으로도 금세 친해지는 모습이 신기했다.

이 곳 대학생 전도사님은 예배 중간중간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불러가며 인사를 건넸다. 새로 온 우리 둘째 딸의 이름도 미리 물어보고는, 예배 시간에 직접 소개해줘서 딸도 한결 편하게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이런 작은 배려 하나가 낯선 곳에 처음 온 아이에게는 큰 위로가 된다는 걸 새삼 느꼈다.

대학생 전도사님의 특별한 이야기

예배를 인도하는 전도사님은 아직 20대 초반의 대학생이다. 이 곳 주일학교에서 자라 지금은 은혜를 갚듯 후배들을 챙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뭉클했다.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주일마다 이 먼 곳까지 와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니 자녀유학을 온 아빠로서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편한 환경에서 자란 우리 딸들이 이런 이야기를 직접 듣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이 곳에 온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언어 장벽 속에서 느낀 솔직한 감정들

사실 이 곳에 오는 게 나에게는 그리 편한 일은 아니다. 일롱고어를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필리핀 유학을 결심했을 때는 영어만 잘 준비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현지 생활을 해보니 영어보다 더 자주 마주치는 건 일롱고어였다. 시장에서도, 동네 어른들과의 인사에서도, 이 곳 주일학교에서도 일롱고어가 훨씬 많이 들린다.

일롱고어를 전혀 모르는 아빠의 솔직한 고백

영어 교육을 목표로 필리핀까지 왔지만, 정작 이 곳 현지어인 일롱고어는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한다. 찬양도, 설교도, 아이들의 대화도 무슨 내용인지 짐작만 할 뿐이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이 곳에 가는 일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낯선 언어 속에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이 편하지 않았고,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처음 몇 번은 예배 시간 내내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며 시간이 지나가기만 기다린 적도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부끄러운 모습이지만, 솔직한 심정이 그랬다.

아이들의 미소가 준 깨달음

그런데 예배가 끝날 무렵, 아이들이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네는 순간 생각이 달라졌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표정과 몸짓만으로 충분히 마음이 전해졌다. 이 작은 공간이 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곳인지, 언어를 몰라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필리핀 유학을 오지 않았다면 평생 몰랐을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진심은 전해진다는 걸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배운 순간이었다.

필리핀 생활에서 다시 배운 것들

리잘 현지교회를 다녀온 뒤로 며칠 동안 계속 그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한국의 옛 모습과 닮은 이곳 환경

이 곳의 생활 환경은 한국의 4,50년 전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 소박한 교실, 부족한 교육 여건까지, 어릴 적 어른들에게 듣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이들의 표정은 조금도 어둡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 딸들보다 더 밝게 웃고, 더 크게 노래를 불렀다. 풍족한 환경에서 자라는 우리 아이들이 오히려 부끄러워질 정도였다.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마음가짐

📌 이런 방문을 계획할 때 알아두면 좋은 점을 정리해봤다.

  • 현지 언어를 몰라도 표정과 태도만으로 마음을 전할 수 있다.
  • 아이들 앞에서는 형식보다 진심이 먼저 전해진다.
  • 자녀와 함께 가면 아이 스스로 느끼는 게 더 크다.

⚠️ 다만 이런 곳을 방문할 때는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사진 촬영이나 선물은 미리 담당자와 상의하고, 형편을 동정하는 태도보다는 함께 어울린다는 마음으로 다가가는 게 중요하다.

둘째 딸과 함께한 이번 방문은 계획에 없던 일정이었지만, 필리핀 유학 생활 중 손에 꼽을 만큼 마음에 남는 하루가 됐다. 가족유학을 결심하고 일로일로까지 온 이유 중 하나가 아이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는데, 정작 그 세상을 배운 건 아빠인 나였던 것 같다. 앞으로도 아이들과 함께 이런 시간을 자주 가지면서, 성적이나 영어 실력만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마음까지 함께 자라는 유학 생활을 만들어가고 싶다. 어려움이 있어도 도전하는 삶, 중년에 시작한 이 도전도 결국은 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