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일로일로에서 유학 중인 두 딸이 이곳에서 첫 학기말 고사를 봤다. 3학기제로 돌아가는 학교의 첫 쿼터 마무리 시험을 앞두고 이브닝 티쳐들과 준비하던 과정, 안 떠는 척했지만 사실은 아이보다 더 졸였던 아빠의 속마음, 그리고 잠깐 곁에서 함께 공부해보며 얻은 솔직한 깨달음을 담아봤다.

시험이라는 단어는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어딘가 사람을 긴장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필리핀 일로일로로 건너온 지도 어느새 반년 가까이 흘렀다.
그 사이 두 딸이 이곳 학교에 자리를 잡았고, 이번에 첫 학기말 고사를 치렀다.
한국에서 보던 시험과는 결이 많이 달랐다.
언어도 다르고, 교과서도 낯설고, 문제를 푸는 방식마저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였을까.
정작 시험을 보는 건 아이들인데, 마음을 졸인 건 나였다.
필리핀 학교의 첫 쿼터 마무리, 3학기제라는 낯섦
이곳 학교들은 한 학년을 우리처럼 1·2학기로 딱 잘라 나누지 않는다.
내가 겪어본 바로는, 학년을 여러 개의 쿼터로 쪼개서 운영하는 곳이 많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역시 3학기제 비슷하게 돌아가고, 이번이 바로 그 첫 번째 쿼터를 마무리하는 학기말 고사였다.
첫 학기말 고사라는 무게
한 쿼터를 마무리하는 첫 시험이라는 건 생각보다 무게가 있다.
그동안 배운 걸 처음으로 한꺼번에 정리해서 확인받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어떻게 나오는지, 채점은 어떤 방식인지 아직 완전히 감이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첫 학기말 고사를 맞닥뜨리는 거다.
한국에서 시험을 봐온 아이들인데도, 이곳의 첫 쿼터 마무리 앞에서는 다시 조심스러워지는 눈치였다.
한국과는 다른 리듬
한국이라면 중간·기말이라는 익숙한 리듬이 몸에 배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 리듬 자체를 새로 익혀야 한다.
시험이 몇 번으로 나뉘는지, 각 쿼터의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이 곧 유학 생활의 일부라는 걸 이번에 새삼 느꼈다.
이브닝 티쳐에게 시험 일정표를 보내며
우리 아이들은 학교 수업이 끝나면 저녁에 따로 이브닝 클래스를 받는다.
방에 함께 지내며 공부를 봐주는 이브닝 티쳐가 있는데, 이 부분이 필리핀 유학 생활에서 꽤 든든한 버팀목이다.
학기말 고사 일정이 잡히자 나는 제일 먼저 각 아이의 이브닝 티쳐에게 시험 일정표를 메신저로 보냈다.
"이런 일정으로 시험을 보니 준비를 좀 부탁드립니다" 하고 말이다.
함께 긴장해주는 사람들
메시지를 보내면서 든 생각인데, 시험을 잘 보길 바라는 마음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옆에서 매일 밤 아이들을 붙잡고 가르친 이브닝 티쳐들이야말로, 어쩌면 나보다 더 결과를 기다리는 사람들일지 모른다.
가르친 만큼 애정이 생기고, 애정이 생기면 결과가 궁금해지는 법이다.
그 마음이 고마웠다.
부모가 할 수 있는 준비
솔직히 부모가 시험 자체를 대신 봐줄 수는 없다.
하지만 일정을 정리해서 미리 공유하고, 아이가 어떤 컨디션인지 선생님과 나누는 것.
이 작은 조율이 생각보다 큰 역할을 한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 TIP
시험 기간에는 아이의 시험 시간표를 캡처해서 이브닝 티쳐에게 미리 전달해두면 좋다. 며칠 전에만 공유해도 선생님이 과목별로 준비 리듬을 잡아주기가 훨씬 수월하다.
안 떠는 척했지만, 사실은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다.
"편하게 봐, 못 봐도 괜찮아" 하고 어른스럽게 말도 건넸다.
그런데 속마음은 전혀 편하지 않았다.
시험 당일 아침, 아이들을 보내놓고 나서 괜히 시계를 자꾸 쳐다봤다.
지금쯤 어느 과목을 풀고 있을까, 어려운 문제에 막혀 당황하고 있진 않을까.
부모라는 자리
아이가 긴장하면 티가 난다.
말수가 줄고, 밥을 깨작거리고, 평소보다 예민해진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유지했다.
부모가 흔들리면 아이가 더 불안해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내 마음속에서는, 잘 보길 바라는 소망이 조용히 요동치고 있었다.
이게 부모 마음인가 보다.
아빠도 잠깐 책을 펴봤다
시간이 될 때는 나도 아이들 옆에 앉아 함께 공부해봤다.
같이 책을 들여다보며 문제를 풀어보려 했는데, 이게 만만치가 않았다.
교재가 생각보다 어려웠다.
영어로 된 개념을 다시 곱씹고, 낯선 용어를 하나씩 짚어가며 겨우 따라갔다.
잠깐 AI의 힘을 빌리다
막히는 부분에서는 잠깐 AI의 도움을 빌리기도 했다.
모르는 문장을 쉽게 풀어달라고 물어보면서 아이 곁을 지켰다.
50대 중반 아빠가 딸 시험공부를 도우려고 잠깐 AI를 켜본 모습이라니.
돌이켜보면 조금 웃기기도 하고, 한편으론 뭉클하기도 했다.
결국 공부는 아이와 선생님의 몫
그렇게 잠깐 곁에서 도와보고 내린 결론은 의외로 단순했다.
공부는 역시 아이와 선생님에게 맡기는 게 낫다는 것.
내가 옆에서 붙잡고 가르치는 것보다, 매일 호흡을 맞춰온 이브닝 티쳐가 훨씬 효과적이다.
부모의 역할은 대신 풀어주는 게 아니라, 잘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고 마음을 다독여주는 쪽에 가깝다는 걸 다시 배웠다.
내가 할 일과 맡길 일을 구분하는 것.
그게 유학 생활에서 부모가 지켜야 할 선인지도 모르겠다.
마무리
첫 학기말 고사가 끝났다.
결과가 어떻든, 낯선 나라에서 첫 쿼터 마무리 시험이라는 관문을 무사히 통과한 것만으로도 아이들이 대견하다.
떨리는 마음을 숨기고 씩씩하게 학교로 향한 두 딸.
그리고 밤마다 함께 애써준 이브닝 티쳐들.
이 모든 시간이 쌓여 아이들의 유학 생활이 단단해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다음 쿼터에는 조금 덜 긴장하고, 조금 더 즐길 수 있기를.
아이들도, 그리고 나도.
노력하지 말고 즐기자! 슈퍼울트라캡숑절대초긍정!
자주 묻는 질문
Q. 필리핀 학교는 한 학년에 시험을 몇 번 보나요?
학교마다 다르지만, 학년을 여러 쿼터로 나눠 각 쿼터를 마무리할 때마다 학기말 고사를 보는 경우가 많다. 우리 아이들 학교는 3학기제에 가깝게 운영돼서 이번이 첫 쿼터의 마무리 시험이었다. 입학 전 학교에 학기 운영 방식을 꼭 확인해두면 좋다.
Q. 이브닝 클래스, 이브닝 티쳐가 뭔가요?
학교 정규 수업이 끝난 뒤 저녁에 따로 받는 개별 지도 수업이다. 우리는 아이들 방에서 함께 지내며 공부를 봐주는 이브닝 티쳐가 있어서, 시험 준비나 숙제, 복습을 밀착해서 챙겨준다. 유학 초기에 특히 큰 힘이 된다.
Q. 시험 기간에 부모가 따로 챙길 게 있나요?
시험 일정표를 미리 정리해서 이브닝 티쳐와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준비 리듬이 훨씬 잡힌다. 직접 가르치기보다, 아이 컨디션을 살피고 선생님과 소통하는 조율자 역할이 현실적이다.
Q. 아이보다 부모가 더 긴장되는 게 정상인가요?
지극히 정상이다. 낯선 나라에서 보는 첫 학기말 고사라면 더더욱 그렇다. 다만 부모가 흔들리면 아이가 더 불안해지니, 속은 졸이더라도 겉으로는 편안한 표정을 유지해주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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