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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일로일로 생존기

🌊 일로일로 씨사이드 패밀리 비치 & 오톤 플라자, 딸들과 무작정 드라이브

by 피터빅 2026. 8. 11.

일로일로 씨사이드 패밀리 비치 가는 길에 들른 오톤 플라자 후기를 담았다. 계획 없이 나선 일요일 오후 드라이브, 티그바우안 바로크 바닷가와 오톤 사가 벽화 조각, 간식값까지 아빠 시선으로 솔직하게 적어봤다.

일요일 오후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학원 수업도 없고, 밖은 해가 슬슬 기울고 있었다. 그냥 차 키를 들고 아이들에게 "바다나 보러 갈까?" 했더니 신발부터 신는다. 목적지는 티그바우안 쪽 씨사이드 패밀리 비치. 그런데 가는 길에 오톤 플라자에 먼저 들르게 됐다. 오늘은 이 두 곳 이야기다.

씨사이드 패밀리 비치

무작정 떠난 일요일 오후 드라이브

계획 없이 나선 이유

여기 일로일로에서 지낸 지도 넉 달이 훌쩍 넘었다. 처음엔 주말마다 뭔가 대단한 걸 해야 할 것 같았는데, 요즘은 그런 부담을 다 내려놨다. 가장 편한 건 목적지를 크게 정하지 않고 그냥 차를 모는 일이다. 지도 앱을 켜고 "바다"라고 검색한 뒤, 가까운 곳 아무데나 찍고 출발했다. 아이들도 이제 이런 즉흥 드라이브에 익숙해져서, 물통 하나씩 챙기고 뒷좌석에 올라탄다. 막상 떠나 보면 계획을 짜고 갈 때보다 훨씬 마음이 가볍다. 날씨가 조금 흐려도, 길이 조금 막혀도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 어차피 정해진 게 없으니 되는 대로 즐기면 그만이다. 이런 여유가 유학 생활에서 얻은 뜻밖의 선물 같다.

티그바우안 방향으로 달린 길

일로일로 시내에서 남서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오톤을 지나 티그바우안으로 이어진다. 시내를 빠져나가면 금세 풍경이 바뀐다. 높은 건물은 사라지고, 야자수와 논, 낮은 지붕의 집들이 창밖을 채운다. 차로 삼사십 분 남짓 달리는 길인데, 이 구간을 지날 때마다 마음이 느긋해진다. 트라이시클과 지프니 사이를 조심조심 지나가는 것도 이젠 제법 익숙해졌다. 딸아이 둘은 창밖으로 지나가는 소들을 보며 깔깔거린다. 운전대를 잡은 나로선 그 웃음소리가 제일 좋은 라디오다. 사실 이 길은 이제 눈 감고도 갈 만큼 익숙해졌는데도, 계절과 날씨에 따라 매번 조금씩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비 온 뒤라 논이 유난히 파랬고, 젖은 흙냄새가 창틈으로 스며들었다. 그렇게 바다 냄새가 슬슬 나기 시작할 무렵, 오톤 플라자 앞을 지나게 됐다.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나무 그늘이 시원해 보여서 잠깐 차를 세웠다.

가는 길에 들른 오톤 플라자

오톤이라는 오래된 마을

오톤은 일로일로에서도 손꼽히게 오래된 마을이다. 기록에 따르면 1566년 스페인 사람들이 이 지역에 들어오면서 옛 이름 '옥통(Ogtong)'이 지금의 오톤이 되었다고 한다. 필리핀에 기독교가 전해지던 초창기 관문 중 하나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래서인지 마을 한복판 플라자에는 세월이 느껴지는 성당과 관공서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관광지처럼 꾸며진 곳은 아니고, 주민들이 실제로 쉬어 가는 생활 속 광장이다. 큰 나무들이 만든 그늘 아래 벤치가 놓여 있고,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도 그 그늘 밑 돌 테이블에 앉아 잠깐 다리를 쉬었다. 관광객보다 동네 사람들이 훨씬 많은, 딱 그런 분위기다. 이런 소박한 광장이 오히려 여행자에겐 더 정겹게 느껴진다.

오톤 사가(Oton Saga) 벽화 조각

플라자 한쪽, 농구 코트 옆으로 커다란 부조 조각 벽이 하나 서 있다. 이름이 '오톤 사가(Oton Saga)'라고 하는데, 마을의 역사를 통째로 새겨 넣은 벽화 조각이다. 필리핀 국가예술가로 불리는 일롱고 출신 조각가 티모테오 후마요(Timoteo J. Jumayo)의 작품이라고 한다. 옛 다투들이 이 땅에 도착하던 장면부터 2차 세계대전까지의 흐름을 인물들로 표현해 놓았다. 회색 돌 위로 튀어나온 병사와 농민, 지도자의 얼굴들이 꽤 생생하다. 아이들은 처음엔 그냥 지나치려다가, 설명을 해 주니 조각 하나하나를 손으로 짚어 가며 들여다봤다. 큰딸은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작은딸은 어떤 인물이 대장이냐고 물었다. 낯선 나라의 역사를 이렇게 우연히 마주하는 것도 유학 생활의 묘미다. 교과서 밖에서 배우는 이런 순간이 오래 기억에 남는 법이다.

 

📌 TIP

오톤 플라자는 입장료 없이 누구나 쉬어 갈 수 있는 공용 광장이다. 화장실이나 편의시설이 넉넉하진 않으니, 물이나 간식은 미리 챙겨 가면 마음이 편하다.

씨사이드 패밀리 비치, 바로크의 바닷가

우기라 거칠었던 파도

플라자에서 다시 조금 더 달려 도착한 곳이 씨사이드 패밀리 비치다. 행정구역으로는 티그바우안의 바로크(Barroc) 마을, 다리 근처 바닷가에 있다. 고운 백사장에 파라솔이 늘어선 그런 리조트형 해변은 아니다. 붉은 벽돌이 깔린 산책로와 방파제 너머로 바다가 탁 트여 있는, 소박한 동네 바닷가다. 우리가 간 날은 마침 우기라 파도가 제법 거칠었다. 바닷물도 맑기보다는 흙빛에 가까웠고, 바람이 세게 불어 아이들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날렸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 바람이 오히려 재밌다며 방파제 앞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잔잔한 바다만 바다는 아니다. 거센 파도 소리를 배경으로 온몸으로 바람을 맞는 것도, 그 나름의 시원함이 있었다.

헐크와 I ❤ BARROC 포토존

이 동네 바닷가엔 아기자기한 포토존이 몇 군데 있다. 알록달록한 색으로 만든 'I ❤ BARROC' 조형물이 하나 있고, 그 옆엔 커다란 헐크 조각상까지 서 있다. 어디서 왜 헐크가 여기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은 그 앞에서 신나게 포즈를 잡았다. 큰딸은 헐크의 초록색 주먹을 붙잡고, 작은딸은 옆에서 브이를 그렸다. 이런 뜬금없는 포토존이 필리핀 시골 관광지의 매력이기도 하다. 거창하지 않아도, 아이들 웃는 사진 몇 장이면 그날 나들이는 이미 성공이다. 바다를 배경으로 아이들 뒷모습을 한 장 찍었는데, 그게 오늘 제일 마음에 드는 사진이 됐다. 비싼 입장료를 낸 유명 해변보다, 이런 소박한 곳에서의 기억이 더 오래간다.

 

⚠️ 주의

우기(대략 6~11월)엔 파도가 세지고 물빛도 흐려질 수 있다. 물놀이보다는 산책과 사진 위주로 즐기고, 방파제나 젖은 바닥에선 아이들 손을 꼭 잡자. 미끄러지기 쉽다.

간식값과 솔직한 후기, 그리고 팁

페소로 즐기는 소소한 간식

이런 즉흥 나들이의 소소한 재미는 역시 동네 간식이다. 오톤 플라자 그늘에 앉아 아이들과 과자를 뜯어 먹었다. 치즈맛 콘칩(Chippy)이나 뻥튀기 같은 과자, 그리고 시원한 음료 몇 개면 충분했다. 가격은 동네 상점 기준으로 콘칩 한 봉지가 대략 30페소(약 700원) 안팎, 포카리 스웨트 같은 음료 350ml가 대략 35페소(약 820원) 정도다. (정확한 금액은 실제 구입 영수증으로 확인해 채워 넣으면 좋겠다.) 오늘 기준 환율은 1페소에 약 23.4원이다. 한국에서라면 몇 배는 줘야 할 간식을, 여기선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아이들에겐 이 작은 사치가 하루 나들이의 하이라이트다. 나무 그늘, 시원한 음료, 아이들 웃음소리면 그날 오후는 이미 충분히 근사하다.

이런 분께 추천, 그리고 아쉬운 점

정리하자면 두 곳 다 '작정하고 가는 관광지'는 아니다. 오톤 플라자는 지나가는 길에 잠깐 쉬며 마을의 역사를 엿보기 좋은 곳이고, 씨사이드 패밀리 비치는 화려하진 않아도 바람과 파도를 즐기기 좋은 동네 바닷가다. 수영이나 리조트를 기대하고 가면 실망할 수 있다. 반대로 관광객 없는 현지 분위기, 소박한 산책과 사진을 좋아한다면 딱이다. 아이와 함께라면 무리한 일정보다 이런 가벼운 반나절 나들이가 오히려 만족도가 높았다. 아쉬운 점이라면 편의시설이 부족하다는 것, 그리고 우기엔 날씨 운이 필요하다는 것 정도다. 그래도 계획 없이 떠난 일요일 오후치고는 아이들도 나도 크게 웃은 하루였다. 유학 생활이 특별한 이벤트로만 채워지는 건 아니다. 이런 평범한 하루하루가 쌓여 진짜 추억이 된다.

무리하게 뭔가를 하려 하지 말고, 그냥 오늘 주어진 시간을 아이들과 즐기면 된다. 노력하지 말고 즐기자! 슈퍼울트라캡숑절대초긍정!

자주 묻는 질문(FAQ)

Q1. 오톤 플라자는 입장료가 있나요? 아니다.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마을 공용 광장이다. 다만 편의시설은 소박한 편이라 물과 간식을 챙겨 가는 걸 추천한다.

Q2. 씨사이드 패밀리 비치는 수영하기 좋은가요? 백사장 리조트라기보다는 방파제와 산책로가 있는 동네 바닷가에 가깝다. 특히 우기엔 파도가 거세니 물놀이보다 산책과 사진을 권한다.

Q3. 일로일로 시내에서 얼마나 걸리나요? 시내에서 남서쪽으로 오톤을 지나 티그바우안 방향이며, 차로 대략 삼사십 분 정도 걸린다. 교통 상황에 따라 조금 달라질 수 있다.

Q4. 아이들과 가기 괜찮은 코스인가요? 반나절 가볍게 다녀오기 좋은 코스다. 오톤 플라자에서 역사 벽화를 구경하고, 바닷가에서 바람 쐬며 간식 먹는 정도면 아이들도 만족한다.